국제

"현금 대신 빚"…빅테크, AI 인프라 위해 회사채 폭탄 발행

한지훈 기자2026.09.01
"현금 대신 빚"…빅테크, AI 인프라 위해 회사채 폭탄 발행
6개사 1820억 달러 조달…채권시장 '한계 시험'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주식시장을 넘어 채권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잇따라 대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서면서, 채권 시장의 소화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파벳(구글)과 아마존, 메타, 오라클 등 주요 AI 인프라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네트워크 구축에 필요한 자금을 채권 발행을 통해 대거 조달하고 있으며, 이들 6개 기업의 발행 규모만 합쳐 182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에는 막대한 현금 보유액을 바탕으로 설비 투자를 감당해왔던 기업들이, 이제는 회사채와 은행 대출, 사모시장까지 총동원하는 쪽으로 자금 조달 구조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250억 달러'가 기본값…메타·엔비디아·오라클도 동참 이번 발행 러시의 규모는 이미 관행이라 부를 만큼 커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들어 메타와 엔비디아, 오라클은 AI 부문 자금 조달을 위해 각각 250억 달러(약 37조7000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 이는 이들 기업이 앞서 주식시장에서 한 번에 끌어모은 금액보다도 큰 액수다. 지난달 기업공개(IPO)로 860억 달러를 조달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도 채권시장에서 25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추가로 찍어냈고, 아마존은 지난 3월 370억 달러어치 채권을 팔았다. 알파벳은 미국에서 200억 달러를 조달한 지 며칠 만에 스위스 프랑화 채권까지 발행했으며, 영국에서는 10억 파운드(약 2조 원) 규모의 100년 만기 채권까지 내놓아 화제를 모았다. 8번째 초대형 발행…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도 '역대급' 발행 러시는 좀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다. 알파벳은 이달 다시 25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올해 들어 250억 달러 이상 규모의 대형 채권 발행은 이번이 여덟 번째로, 전부 기술기업들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전체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이달 17일까지 미국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액은 1452억 달러에 달해,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2020년 8월 세웠던 종전 최고 기록(1360억 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올해는 1월과 6월, 7월에도 월간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 기록이 잇따라 깨졌으며, 나머지 3개월 역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발행량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요는 오히려 식어간다"…아마존 청약경쟁률 3.4배→1.6배 문제는 이런 대규모 발행이 이어지는 사이 정작 투자자 수요는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존이 최근 AI 인프라 투자금 조달을 위해 25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에 나섰지만, 청약 수요는 1.6배에 그쳤다. 아마존의 새 채권 금리는 기존 채권보다 0.12~0.22%포인트 높게 책정됐는데, 이는 올해 시장 평균 금리 프리미엄(0.04%포인트)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 3월 아마존이 37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을 당시 청약 경쟁률이 약 3.4배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4개월 만에 투자자 수요가 큰 폭으로 줄어든 셈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과거 역대급 인수·합병(M&A) 사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이제 빅테크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회사채 시장에도 피로감이 쌓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국채와 회사채 '자금 쟁탈전'…美 장기금리도 요동 빅테크의 회사채 발행 러시는 미국 국채 시장과도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 정부 부채는 40조 달러에 육박하며 불과 2년 만에 약 5조 달러 늘었는데, 재정지출을 감당하기 위한 국채 발행이 늘어나는 가운데 신용도가 높은 빅테크까지 수천억 달러의 회사채를 동시에 쏟아내면서 투자자 자금을 놓고 미국 정부와 기업이 경쟁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런 자금 쟁탈전 속에 장기 국채 금리는 일제히 뛰고 있다. 미국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5.3%를 넘어섰으며, 재정적자 확대와 인플레이션 우려, AI 투자 확대에 따른 기업들의 대규모 회사채 발행이 맞물리며 장기금리 상승 압력이 이어지고 있다. 신생 클라우드 기업 전환사채까지 급증…"안전과 위험의 경계 모호" 투자 부적격 채권 발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생 클라우드 기업들의 전환사채(CB) 발행도 올해 들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우려를 더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는 '안전한 채권'과 '위험한 채권'을 양분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역사적으로 금융 불안정은 투자자들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자산을 둘러싸고 쌓이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AI 혁명이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면서 승자가 순식간에 패자가 됐다가 다시 승자로 뒤집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 어떤 기업이 10년, 30년, 혹은 알파벳의 최근 채권처럼 100년 뒤에 상환될 수 있을지 구분하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2027년 발행 규모 두 배 전망…"생산성으로 이어져야 정당화" 이들 빅테크의 채권 발행 규모는 2027년 다시 거의 두 배로 불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가 실제 생산성 향상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면 현재의 대규모 차입은 정당화될 수 있지만, 기대했던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막대한 회사채가 기업들의 부채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채권시장 내 자금이 특정 산업과 소수의 대형 기업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신용리스크 확대 우려와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다만 현재까지는 상위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단기적 안정성이 유지되고 있어, 향후 기업별 재무 여력의 차이에 따라 신용리스크가 어떻게 갈릴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AI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돌아오느냐" 전문가들은 빅테크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계속 커지는 가운데, 관건은 결국 AI 투자가 실제 매출과 이익 성장으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AI 투자 대비 수익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면, 미국 국채와 빅테크 회사채 간 자금 경쟁이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이는 다시 전체 채권시장의 신용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7년으로 예고된 발행 규모 확대가 시장에 어떤 충격파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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