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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안 읽어도 도서전엔 간다"…'텍스트 힙'이 숨긴 민낯

한지훈 기자2026.08.25
"책은 안 읽어도 도서전엔 간다"…'텍스트 힙'이 숨긴 민낯
도서전 오픈런에 굿즈 완판…"10년 다녔지만 이런 인파 처음"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세련된 취향으로 여기는 '텍스트 힙(Text Hip)' 현상이 올해 한국 출판·문화계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는 1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참가사 관계자들은 지난해보다도 관람객이 많은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평일 오전 7시부터 입장 대기 줄이 형성됐고, 첫날 오전에 이미 일부 부스의 책과 굿즈가 품절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현장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티켓 부스 앞을 지키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이 열기에 힘입어 비슷한 시기 서울제대로도서전, 거북목도서전, 서울한평도서전 등 소규모 도서전도 잇따라 열리며, '책이 안 팔린다'던 출판계의 오랜 한숨이 무색할 정도의 흥행이 이어졌다. 방문객 70%가 2030…"북톡·왓츠인마이책장 인증이 놀이문화로" 이번 도서전 열기는 SNS 인증 문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6월 도서전 방문객의 약 70%가 2030세대였던 것으로 집계됐다. 틱톡에서는 1분 내외로 독서 후기를 올리는 '#북톡(#BookTok)' 콘텐츠가 유행하고, 인스타그램과 X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왓츠인마이책장' 게시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인이 언급한 책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유명인 모방 소비'도 트렌드를 견인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한 아이돌 멤버가 쇼펜하우어 관련 도서를 언급한 뒤 해당 책의 판매량이 전월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사례도 있었다. 20대의 독서율은 성인 평균을 크게 웃도는 약 78%로 나타났으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이런 흐름은 한층 가속화됐다는 평가다. "책보다 굿즈가 주인공"…도서전 성격 변질 우려도 다만 겉으로 드러난 흥행 이면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10년 가까이 도서전을 다녔다는 한 30대 관람객은 최근 도서전이 과도기라고 평가하며, 부스들이 젊은 관객을 사로잡기 위한 굿즈 판매 위주로 변하면서 정작 책이 주객전도된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이 몰리는 굿즈 판매 존과 사인회 존을 별도로 만들거나 별도의 인파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는 텍스트 힙 열풍이 실제 독서 행위보다 '책과 관련된 경험을 소비하는 것'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로 보니…"도서전 주인공은 2030 아닌 40대" 실제로 소비자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텍스트 힙 열풍의 실체는 미디어가 그리는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 트렌드 분석업체 픽플리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도서전·북페어 방문 경험을 묻는 질문에 40대가 27.0%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방문율을 보였다. 오프라인 도서 공간을 가장 활발하고 꾸준하게 점유하는 세대는 2030세대가 아니라 오히려 40대였던 셈이다. 세대별 소비 패턴도 뚜렷하게 갈렸다. 20대는 도서전을 '1회성 이벤트'로 소비하며 굿즈 등 '취향'에 지갑을 여는 반면, 40대는 도서전을 '다시 찾는 공간'으로 인식하며 실제 책 구매에 더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조사기관은 '구경'은 20대가 하고 '실결제'는 40대가 한다고 요약했다. 다만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2025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24년 도서 발행 부수는 전년 대비 2.7% 증가하며 반등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돼, 텍스트 힙이 완전히 실체 없는 거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평가다. "디지털 피로감이 근본 배경"…해외에서도 유사 흐름 숏폼 영상 소비에 익숙해진 세대가 오히려 종이책과 아날로그 활동으로 회귀하는 흐름은 해외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약 6억7000만 권의 종이책이 팔리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는데, 유명인들로 시작된 독서 열풍이 SNS를 타고 퍼지며 독서가 하나의 트렌디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은 결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텍스트 힙 트렌드의 근본 배경으로 디지털 피로감 해소 욕구를 꼽는다.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친 젊은 세대가 종이책과 필사, 독서 모임, 손편지 쓰기 같은 텍스트 기반 활동에서 새로운 만족감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책을 펼칠까? 전문가들은 도서전의 흥행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책을 펼치는지 여부라고 지적한다. 텍스트 힙이 SNS 인증과 굿즈 소비에 그치는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지, 아니면 실제 독서량 증가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습관으로 자리 잡을지가 이 트렌드의 진짜 성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20대의 '경험 소비'와 40대의 '실질 구매'가 어떻게 맞물려 출판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수 있을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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