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못 구하면 AI도 없다"…데이터센터 전력난
김지수 기자2026.08.22

신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4만9397MW…1GW급 발전기 53기 필요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 확산과 함께 데이터센터가 국가 경쟁력의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AI 전력 전쟁'이 시작됐다.
경쟁의 초점은 더 이상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을 얼마나 오래 공급할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9년까지 신규 건설을 요청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이 4만9397MW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충당하려면 1GW급 발전기 53기를 추가로 지어야 하고, 배전단 변압기도 7만7168MVA 규모로 새로 증설해야 한다.
기존의 데이터센터가 10~25MW 수준의 전력을 소비했던 것과 달리,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는 100MW가 넘는 전력을 요구하며 수주에서 수개월간 24시간 상시 고부하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이 큰 차이다.
정부, 원전 2기·SMR 1기 신규 건설 확정…"AI가 원전 정책 바꿨다"
전력 수급 불안에 대응해 정부는 원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신규 원전 도입에 신중했던 정부가 최근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신규 건설을 확정하며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는데, 그 급선회의 배경에는 인공지능이 자리 잡고 있다.
다만 원전만으로는 완벽한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시간 멈추지 않아야 하는 데이터센터의 안정성을 담보하고 송전망의 제약을 극복하며 에너지를 유연하게 공급할 '마지막 퍼즐'이 필요한데, 그 퍼즐로 수소연료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블룸에너지가 최근 발표한 '2026 데이터센터 전력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의 약 3분의 1이 1GW급 이상의 초대형 규모로 구축될 전망이며, 1GW급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소비량은 뉴욕시 전체에 맞먹는 수준으로 분석됐다.
정부, 2038년까지 ESS 23GW 확보…"2028~2029년 필요분 선제 투입"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저장장치 확충 계획도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2038년까지 23GW 규모의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2028~2029년에 필요한 2.1GW 물량은 2026년부터 선제적으로 확보해 계통 포화 지역에 우선 투입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대용량 변압기, 고효율 무정전전원장치(UPS), 전력반도체, 액체 냉각 전원 기술 등 전력기자재 산업 전반에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비수도권 지역에 신청된 데이터센터 131개소 가운데 전력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는 곳은 64개소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 같은 전력난에 대응해 신규 데이터센터들은 전체 전력 수요의 10~15%를 자체 발전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냉각'도 승부처…액침 냉각으로 전력 30%↓, KAIST는 90% 절감 기술도
전력 소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냉각 문제 해결에도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데이터센터 전력량의 30~50%가 서버 발열을 식히는 데 쓰이는 만큼, 전자 장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냉각유에 담가 열을 식히는 '액침 냉각' 기술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공랭식 대비 전력 사용량을 약 30%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KAIST가 상온의 물만으로 고발열 반도체 칩을 식히는 매니폴드 마이크로채널 냉각장치를 개발해 냉각전력을 90%까지 절감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SK그룹도 데이터센터 내 분산 발전원 설치를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AI 파워 오퍼레이터' 기술과 액체 냉각 기술을 결합한 에너지 솔루션을 내놓은 바 있으며, 삼성중공업은 부유식 데이터센터로 새로운 시장 선점에 나서는 등 업계 전반에서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다.
IEA "2026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 1000TWh 돌파"…2030년엔 전체의 10% 차지
문제의 심각성은 국제 기구의 전망치에서도 드러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데이터센터·AI·가상화폐 관련 산업의 전기소비량이 2022년의 2배 수준인 1000테라와트시(TWh)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전력 사용량 중 데이터센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1%에서 올해 4.4%로 두 배가량 늘고, 2030년에는 10.2%까지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IEA는 추정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그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에 주력해온 투자 방향을 바꿔, 앞으로의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비해 소형모듈원자로 등 안정적 전원 확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아일랜드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을 통해 데이터센터 전력을 공급받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 사례다.
'전력망 변동성'도 새 과제…연구기관들 리스크 대응책 모색
전력 확보 자체 못지않게 전력망의 변동성 리스크 관리도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전력망을 흔드는 AI 데이터센터의 변동성 리스크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AI 데이터센터가 이미 '전력 먹는 하마'로 자리 잡은 만큼 이에 대응하는 정책·계통영향평가·전력구매계약(PPA)·분산전원 등 다각적인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짚었다.
원전·수소·ESS·냉각기술의 '복합 처방'이 관건
전문가들은 AI 시대의 전력난이 어느 한 가지 해법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라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원전과 SMR로 기저전력을 확보하고, 수소연료전지와 ESS로 유연성을 보완하며, 냉각기술 혁신으로 소비 자체를 줄이는 복합적인 처방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력 인프라 확충 속도가 AI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가 향후 국가 AI 경쟁력을 가르는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