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사건, 담당자 혼자 지웠다"…경찰 기록 시스템 허점
한지훈 기자2026.09.02

제주서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 파문…"2시간 30분 만에 셀프 종결"
경찰이 실종 사건을 접수한 지 불과 2시간 30분 만에 임의로 종결하고 관련 기록까지 삭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 내부 시스템의 허점이 도마에 올랐다.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A 경장은 지난 5월 실종된 장미란(가명) 씨의 사건을 접수한 뒤, 실종자를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안전을 확인하는 원칙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사건을 임의 종결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A 경장은 이 사건을 112 신고 시스템에는 '연락이 닿았다'고 기록해놓고, 정작 전국 실종자 발생 상황을 관리하는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에는 '교통사고 사상자'라는 허위 사유를 입력해 관리 목록에서 아예 삭제해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이 사건은 실종자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뒤늦게 전모가 밝혀졌다.
전수조사 결과 25건 추가 확인…"10건은 안전 확인도 없이 종결"
제주경찰청은 이 사건을 계기로 A 경장이 처리한 실종 사건 298건을 1차 전수조사했고, 그 결과 허위 종결과 기록 삭제가 의심되는 사례 25건을 추가로 확인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이 가운데 10건은 실종자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허위 내용으로 사건을 종결한 정황이 발견됐다.
나머지 15건은 실종자의 소재 자체는 확인했지만,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교통사고 사망'이나 '변사' 등 허위 사유를 입력해 기록을 삭제한 사례였다.
다행히 이번에 추가로 확인된 25건의 실종자는 모두 신변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경찰은 경제적 이익이나 실종자에 대한 적대감 등 외부적인 범행 동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혼자 야간당직, 승인 절차 없어"…구조적 통제 공백 드러나
이번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담당자 한 명이 아무런 제동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었던 구조적 허점이다.
제주서부서 실종팀은 인원이 4명에 불과했고, A 경장은 나흘마다 혼자 야간당직을 서야 했다.
당시 담당자가 전산상 사건을 단독으로 종결해도 관리자가 이를 즉시 확인하거나 승인하는 절차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경찰 전산망 간 기록을 대조하는 장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 경장의 회피적 대처와 무책임한 태도가 결합해 이런 범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했지만, 개인의 일탈로 결론짓는 것과 별개로 사건 처리 과정 전반에서 구조적 허점이 노출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년 전 이미 개선책 건의됐다"…무시된 경고
더욱 논란이 되는 대목은 이런 시스템 허점이 이번이 처음 지적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취재 결과 이미 2년 전 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실종자 대면 확인 등 시스템 개선책이 경찰청에 건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무기징역이 확정된 한 피의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여성 목소리를 흉내 내며 피해자인 척 실종신고 해제를 시도했는데, 경찰이 발신자 성별을 남성으로 표기해놓고도 피해자의 전화가 맞다고 넘겨버려 논란이 인 바 있다.
같은 해 서울경찰청이 이 사건을 분석해 작성한 내부 문건인 '실종사건 수사체계 개선방안'에는 대면 등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직접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데도 신고자 의사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는 점, 시스템상 관리자의 확인·승인 절차가 없었다는 점 등이 지적돼 있었다.
특히 이번 제주 사건에서 심각한 허점으로 드러난 실종자 프로파일링 시스템의 개선 방안도 이미 이때 경찰청에 건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뒤늦은 제도 보완…이중 결재 의무화 등 요구 봇물
파문이 커지자 경찰은 뒤늦게 제도 보완에 착수했다.
실종 상태를 해제하려면 해제 사유를 적고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경찰청 예규가 있었음에도 현장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던 만큼, 관리자 확인과 승인 절차를 실질적으로 강제하는 시스템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도 강도 높은 대응을 요구하고 나섰다.
초당적 조사기구 신설과 함께 실종 사건 종결 시 이중 결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한 정당 대변인은 경찰이 사건을 접수 2시간 30분 만에 거짓말로 '셀프 종결'하고 기록까지 삭제한 것은 국민의 생명을 방치한 범죄라며, 담당자의 임의 처리를 막을 2중·3중 검증 시스템과 전면적인 수사 개편을 촉구하기도 했다.
관건은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앞두고 경찰 견제장치 마련될까"
이번 사건은 다음 달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경찰의 역할이 더욱 확대되는 시점에 불거졌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경찰 수사에 대한 내부·외부 견제 장치를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경찰 조직의 시스템 문제를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함께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담당자 한 명이 별다른 검증 없이 실종 사건을 종결·삭제할 수 있었던 구조적 공백이 이번 사건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만큼, 이번 전수조사와 제도 개편이 실제로 재발 방지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향후 경찰 개혁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