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152% 폭등"…역대급 폭염이 부른 '히트플레이션'
정하윤 기자2026.08.25

시금치·오이·애호박·상추 줄줄이 급등…"잎채소가 가장 취약"
극심한 폭염이 밥상 물가를 뒤흔들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기준 시금치 소매가격은 100g에 1978원으로, 딱 한 달 전(784원)보다 152.3% 폭등했다.
오이는 10개당 5369원에서 8313원으로 54.8% 뛰었고, 애호박은 1개당 1026원에서 1504원으로 46.6%, 청상추는 100g당 1165원에서 1651원으로 41.7% 올랐다.
이후에도 상승세는 꺾이지 않아, 지난달 11일 기준 적상추(4㎏) 평균 소매가격은 3만9820원으로 전월 대비 30%, 전년 대비 19% 올랐고 청상추(4㎏)도 전년 동기 대비 16.6% 오른 4만350원까지 치솟았다.
시금치(4㎏) 소매가격 역시 5만1820원까지 급등했다.
잎채소가 유독 큰 타격을 입은 이유는 명확하다.
시금치와 상추처럼 잎이 얇고 수분 증발이 많은 작물은 고온에 특히 취약해, 폭염이 이어지면 잎이 시들거나 끝부분이 타면서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
오이와 애호박 역시 생육 부진과 낙화, 기형과 발생으로 정상 출하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 이어 가뭄까지…"추석까지 밥상물가 부담 이어질 듯"
문제는 이런 흐름이 추석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올여름 극한 폭염이 밀어올린 히트플레이션이 이후 가뭄과 맞물리면서, 주요 채소·과일 생산 지역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축산물 가격도 좀처럼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밥상 물가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폭염에 따른 가축·어류 폐사도 잇따르면서 고시세가 이어졌고, 광어 회 가격도 5월 초 이마트 할인가(360g에 1만9000원대)와 비교해 3개월 만에 큰 폭으로 올랐다.
추석 대표 과일인 사과·배 등도 폭염·가뭄 피해 여부에 촉각이 곤두선 상태다.
7월 물가 2.8%로 진정됐지만…"근원물가는 오히려 2년8개월 만에 최고"
물가 지표에도 이런 흐름이 반영되고 있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8%로 8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이는 국제유가 하락과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효과가 컸을 뿐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2.6%로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농산물을 제외하고도 전반적인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폭염 지속으로 농산물 가격마저 급등하면서 8월 물가는 다시 3%대로 반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고, 실제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나타나며 이런 우려가 현실화됐다.
한은 "극한고온 충격 땐 물가압력 0.56%p까지 확대"
한국은행도 폭염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인 고온 충격이 발생했을 때 12개월간 물가 상승 압력은 0.03%포인트 수준에 그치지만, 충격 규모가 상위 5%에 해당하는 극한고온 상황에서는 물가 상승 압력이 0.56%포인트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에 따른 채소·축산물 가격 상승과 국제유가 불안이 동시에 겹칠 경우, 공급 측 물가 압력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이란과 미국 간 긴장이 재차 고조되면서 국제유가 상승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어, 히트플레이션과 유가발 물가 압력이 겹치는 '이중 충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세계도 '기후발 밥상 쇼크'…佛 닭 300만 마리 폐사
히트플레이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시장에도 새로운 위기가 닥치고 있다.
과거에는 전쟁과 원유 가격 상승, 물류망 차질이 물가를 끌어올린 주요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폭염·가뭄·산불 등 기후 변화가 식탁 물가를 위협하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폭염 이후 닭 약 300만 마리가 폐사했고 우유 생산량도 약 30% 감소했다.
유럽 전역의 채소 농가 피해도 심각해, 잎채소와 당근·양파·마늘 등 일부 품목은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미국 농무부(USDA)는 2026년 신선 채소 가격이 전년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분석했으며, 밀과 옥수수 생산량 감소가 빵·파스타·시리얼·오트밀·밀가루 등 미국 가정의 주요 소비 식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후 소고기·계란·채소 등 주요 먹거리 가격은 이미 25% 이상 오른 상태다.
"장기적으론 전쟁보다 더 큰 물가 변수 될 수도"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폭염이 향후 식품 가격 상승의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전쟁 같은 지정학적 요인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히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이상기후 현상이 아니라, 기후변화가 심화될수록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구조적 물가 리스크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폭염이 잦아질수록 커지는 밥상물가"
전문가들은 폭염과 가뭄이 매년 반복되는 기상이변으로 자리 잡는 이상, 히트플레이션이 '뉴노멀'로 굳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의 할인 지원 같은 단기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농산물 생산 기반의 기후 적응력을 높이는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유가 불안까지 겹칠 경우 공급 측 물가 압력이 한층 커질 수 있는 만큼, 향후 추석 성수기와 겨울철까지 이어질 밥상 물가의 흐름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