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만 쉽니다"…2026년 여행 키워드 '콰이어트케이션'
박정아 기자2026.08.28

스웨덴·노르웨이 "소음 없는 방이 더 비싸다"…'조용함'에 값 매기는 시대
여행지에서의 '고요함'이 이제 하나의 프리미엄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조용함(Quiet)'과 '휴가(Vacation)'를 합친 신조어 '콰이어트케이션(Quietcation)'이 2026년 전 세계 여행 트렌드를 꿰뚫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유명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대신 자연 속에서 고요를 만끽하는 이른바 '캄케이션(calm+vacation)'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여행지를 데시벨(dB) 순서로 분류해 '조용함 지수' 또는 '소음 예보'를 발행하고, 소음이 적은 객실을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조용함이 이제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가치로 격상된 셈이다.
스칸디나비아 지역 매체 스칸디나비아 스탠다드는 노르딕 지역의 숲과 피오르, 낮은 인구밀도가 인파에서 벗어난 긴 여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이 콰이어트케이션 트렌드를 팔기에 자연스럽게 적합한 곳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완전한 암흑 리트릿"까지 등장…번아웃·디지털 피로가 근본 배경
이런 흐름의 배경에는 일상화된 디지털 피로와 번아웃이 자리 잡고 있다.
여행 전문지 트래비에 따르면 2026년 콰이어트케이션은 번아웃과 스크린 피로를 피해 고요 속으로 도피하는 여행으로 정의된다.
스웨덴 남부에서는 '소음 지도'를 따라 고요한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이 등장했고,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완전한 암흑 속에서 머무는 리트릿까지 생겨났다.
하퍼스바자는 AI 기술의 발달이 이런 트렌드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짚었는데, 예약부터 번역, 체크인까지 여행 준비 과정의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 처리하면서, 여행자는 계획과 절차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오롯이 휴식과 경험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서도 확산…디지털 기기 제한한 웰니스 리조트 등장
콰이어트케이션 열풍은 국내 여행업계에도 상륙했다.
강원 홍천 종자산 자락에 위치한 웰니스 리조트 선마을은 지난 7월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도심 소음과 디지털 기기 사용을 최소화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의 회복을 돕는 콰이어트케이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곳은 객실에 아예 TV를 두지 않았고, 리조트 전역에서 와이파이 사용을 제한해 디지털 자극을 최소화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숲 테라피와 싱잉볼 명상, 요가 등 웰니스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하와이 빅아일랜드 용암 해안에 자리한 칼라니 오션사이드 리트릿 센터가 명상과 요가, 댄스, 자연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 회복이 필요할 때 찾기 좋은 콰이어트케이션 명소로 소개되고 있다.
'책스케이프'·'여만추'와 함께 부상…"세분화되는 개인 맞춤형 여행"
콰이어트케이션은 독립된 트렌드가 아니라, 여행이 점점 개인 맞춤형으로 세분화되는 큰 흐름의 일부로 읽힌다.
'텍스트힙' 열풍과 맞물려 소설 속 배경을 걷고 서점·도서관을 찾는 '책스케이프' 여행이 함께 주목받고 있으며, 스카이스캐너가 꼽은 2026년 트렌드 중에는 여행지에서 인연을 찾는 '여.만.추(여행에서의 만남 추구)'도 포함돼 있다.
이혼 이후 감정 회복이나 부부 관계 재정비, 진로 탐색처럼 관계와 마음을 돌보는 여행부터 영화·드라마 배경지를 따라가는 콘텐츠 기반 여행, 스포츠·팬덤 이벤트 중심의 테마 여행까지, 여행은 점점 관광에서 벗어나 개인의 회복과 취향을 중심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직장인 사이에선 '몰래 일하며 쉬기'로 변형…재택근무 확산이 배경
흥미로운 점은 콰이어트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여행업계뿐 아니라 직장 문화에서도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재택·원격근무가 보편화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회사에 공식적으로 휴가를 알리지 않은 채, 여행지나 휴식 공간에서 조용히 근무를 이어가며 동시에 휴식 효과를 누리는 근무 방식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어디서든 업무가 가능해진 환경이 이런 변형된 형태의 콰이어트케이션을 낳고 있는 셈인데, 이는 '진짜 휴식'을 추구하는 여행업계의 콰이어트케이션과는 다소 결이 다른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고요함을 팔되 붐비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콰이어트케이션이 지속 가능한 트렌드로 자리 잡으려면, 업계가 역설적인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칸디나비아 스탠다드는 여행업계가 인파를 몰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고요함에 대한 접근성을 팔고, 이미 그 땅에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를 존중하며, 모든 외딴 장소를 콘텐츠 소재로 전락시키지 않을 수 있다면, 고요함은 계속해서 특별한 종류의 럭셔리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결국 콰이어트케이션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여행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고요함'이라는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면서도 그 본질적 가치인 한적함을 해치지 않는 균형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