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래 잠 없어"…진짜 '숏 슬리퍼'는 인구의 1%뿐
최윤서 기자2026.08.30

SIK3 유전자 돌연변이가 만드는 '초고속 수면'
하루 3~4시간만 자고도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이른바 '숏 슬리퍼(short sleeper)'의 비밀이 유전학적으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 신경과학자 첸훙민 교수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연구에서, 자연적으로 짧게 자는 사람들의 'SIK3' 유전자에서 특이한 돌연변이(SIK3-N783Y)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뉴런 사이 시냅스에서 활성화되는 이 효소가 잠든 사이 몸의 유지·보수 작업을 초고속으로 처리하도록 만든다고 결론지었다.
첸 교수는 수면이 뇌가 축적된 독소를 청소하고 손상을 복구하는 시간인데, 숏 슬리퍼는 이런 중요한 기능을 3~4시간 안에 마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20년 추적한 모녀 사례로 시작…4개 유전자서 5종 돌연변이 확인
이번 연구는 하루아침에 나온 결과가 아니다.
UCSF 잉후이 푸 교수 연구팀의 관련 연구는 약 20년 전, 하루 6시간 이하로 자는 가족이 연구팀에 유전체 분석을 의뢰하며 시작됐다.
당시 분석 결과 모녀에게서 수면-각성 주기를 조절하는 시계 유전자에 희귀한 돌연변이가 발견됐고, 이후 비슷한 수면 습관을 가진 수백 명이 추가로 연구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4개 유전자에서 5종의 돌연변이가 확인됐다.
유전자 돌연변이는 가족마다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지난해 UC버클리 연구팀이 진행한 별도 연구에서도 평균 수면 시간 6.3시간, 최소 3시간만 자도 문제없이 신체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분석한 결과 다섯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확인됐으며, 이 중에는 일주기 리듬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도 포함됐다.
동물실험에서 이 돌연변이를 활성화한 모델은 대조군보다 약 31분간 잠을 덜 잤다.
"진짜 숏 슬리퍼는 인구의 1% 미만"
문제는 이런 진짜 숏 슬리퍼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간의 연구를 종합할 때 학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실제 유전적 숏 슬리퍼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 또는 그보다도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대학교 행동신경과학자 앤드루 쿠건 교수는 진짜 숏 슬리퍼란 적게 자고도 낮에 졸지 않고 인지 기능 저하나 감정 기복이 전혀 없는 사람을 뜻한다고 정의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은 결코 몸에 무리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숏 슬리퍼 체질은 후천적 노력으로 얻을 수 없고 오직 유전자에 의해 선천적으로 정해진다고 못박았다.
"6시간 미만도 괜찮다"는 대부분은 그냥 '착각'
바로 이 지점이 많은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착각의 근원이다.
쿠건 교수는 6시간 미만만 자도 개운하다고 느끼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는 유전적 숏 슬리퍼가 아니라, 유전자와 무관하게 그저 짧은 수면에 익숙해진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경우 당장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심신에 악영향이 누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성인의 적정 수면 시간은 7~8시간으로 권고되며, 유아와 어린이가 청년보다, 청년이 중장년이나 노인보다 더 오래 자는 것이 정상적인 생애주기에 따른 수면 패턴이다.
"적게 자면 더 많은 일 할 수 있는데"…동경 속 위험한 자기암시
수면 시간이 짧으면 그만큼 더 많은 활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숏 슬리퍼 체질을 동경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쿠건 교수는 이런 심리를 이해하면서도, 유전적으로 타고난 특성을 후천적 노력으로 흉내 내려는 시도는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스로를 숏 슬리퍼라고 착각한 채 만성적인 수면 부족 상태를 무리하게 유지할 경우, 당장은 인지 기능에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집중력 저하와 면역력 약화, 대사 이상 등 다양한 건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 "수면장애 치료 열쇠 될 수도"…신중한 접근 강조
의학계는 이번 유전학적 발견이 수면장애 치료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버드 의과대 신경학자 클리포드 세이퍼 박사는 SIK3가 수면 패턴 변화에 관여하는 유전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연구가 이 유전자가 졸림과 수면량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 발견만으로 SIK3 돌연변이가 수면 욕구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추가 연구를 통해 데이터가 누적되면 사람들의 수면이 어떻게 조절되는지 정확히 파악해 수면장애 치료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건은 "유전자 검사 없이 스스로 숏 슬리퍼임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
전문가들은 이런 유전학적 연구 성과가 향후 짧은 수면으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기술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에 기대를 걸면서도, 정작 지금 당장 필요한 메시지는 '나는 예외'라는 착각을 경계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자신이 유전적 숏 슬리퍼인지 여부는 정밀한 유전자 검사 없이는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특별한 검증 없이 스스로를 숏 슬리퍼라 단정하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감수하는 태도는 건강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